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한 걸음.

  태어나서 동영이가 생기기 전까지 많은 면에서 모범적이었던 신영이는 던지는 아이, 때리는 아이, 그리고 심하게 떼쓰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이런 모습에 화가 나고 짜증 나는 감정을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신영이에게 투사했다. 아이는 내 의도와는 달리 점점 더 빗나갔고 뭐가 서러운지 새벽에 깨 두세 시간씩 우는 일이 잦아졌다. 나는 직장에서는 졸기, 실수하기 일쑤였고 난 이제 퇴물인가 싶은 자괴감에 우울증이 찾아오며 아내와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많아졌다.

  신영이가 태어나고 동영이가 태어난 지금까지 나에게 아버지란 이름은 걸맞지 않았다. 몸은 집에 있지만, 항상 마음은 다른 곳을 향했다. 내가 이놈들만 없다면 지금쯤 ~을 하고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만 했다. 그러다 보니 겨우 쉬는 날에만 하는 집안일, 육아가 의무로 다가왔고 나에게 ‘부정(父情)’이란 게 나날이 희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곰곰이 생각 좀 해봤다. 신영이가 자라서 부모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드는 느낌이 무엇이 될까. 따뜻함, 포근함, 혹은 공포? 그 순간 신영이에게 좋은 느낌이 드는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부모’라는 단어에서 따스함이 느껴지는 기분을 선사하고 싶었다.

  일단 신영이가 잘못했을 때 내가 취하는 행동부터 바꿨다. 울면 가만히 가서 안아줬고(전에는 외면했다.) 때리거나 던질 때는 내가 화났다고 말을 하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 떼를 쓸 때는 무조건 안된다고 하기보다는 신영이의 관심사로 살짝 주의를 돌려 상황을 모면했다(이 나이의 아이들은 타협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화를 내지 않았다.

  며칠 이렇게 했더니 결과는? 신영이는 겨우 조금 나아졌다. 여전히 동영이를 싫어하고 떼를 쓴다. 우는 일은 많이 줄긴 했다. 그 대신 내가 많이 달라졌다. 애들에게 하는 일이 더는 의무로 다가오지 않고 즐겁게 하는 생활이 되었다. 깊은 우울증도 이제는 없다. 요새는 신영이에게 더욱더 잘 해주고 싶다. 남들은 보통 애 태어날 때 받는 ‘아버지’라는 타이틀이 이제야 내게 조금은 어울리는 것 같다.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생각이다. 

  애들은 부모의 마음을 정말 신기하게 잘도 읽는다. “아빠 안 좋아”를 연발하던 신영이는 이제 열에 네 번은 “아빠, 좋아”라고 한다. 눈을 마주치며 “아빠도 신영이 좋아”라고 대답한다.

- 2011년 7월 8일에 페이스북 노트에 올린 글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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